지난주차 한국의 발전과정 이어서.
-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핵심적인 특징
1) 수출지향적 산업화 전략
2) 경공업 위주의 노동집약적 산업 -> 중화학공업 위주의 자본집약적 사업으로 순차적으로 산업구조 고도화
3) 산업화 전략이 국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체계적으로 지도
- 발전국가 형성의 역사 구조적 조건
경제성장에 중요한 것은 '국가 자율성'. 반대로 성장해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상호관계.
주권이라는 것이 밑받침되어야 함.
국가, 자본, 노동관계에서 국가의 압도적인 우위와 자율성 - 국부의 증진이라는 민족주의적 국가발전목표의 설정
국가라는 것은 자유주의와 중상주의 중에서 후자에 가깝다. 현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국가발전목표의 설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민족주의적 성향.
1) 체계적이고 포괄적이고 과대성장인 국가관료기구를 보유.
권력이 집중화된 국가권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일제가 만들어놨던 행정기구가 그대로 넘어가 미군 -> 이승만 정권으로 이동.
2) 남북한으로 분단. 최전방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격파할 필요할 있었다 - 민중부문의 영향력이 거세된 상태에서 근대국가가 형성.
3) 토지개혁을 실시. 지주계급을 소멸시키고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제거했다.
국가에 있어 그들이 걸림돌이었다. 토지개혁 실시를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실시. 이때 토지 구매량을 한정시켰다. 소농민들이 많이 생겨난다.
4) 국가에 의한 '위로부터의' 자본가계급의 형성.
소위 재벌. 재벌이 형성되는 과정 - 위로부터의.
북한의 토지개혁을 보여주는 사진.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먼저 시작했다.
우리나라 또한 2년이 지나 토지개혁을 시작했다.
토지를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했는데, 1950년에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했다.
- 한국 발전주의 국가의 역사적 진화 과정 (1)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식민지 단계: 일차상품수출 단계.
이때는 한반도였기 때문에, 북한에는 지하자원이 많았어서 당시 공업 원료가 되는 것을 수출하는 단계였다. (일본으로)
2) 1950년대: 수입대체 산업화 단계.
원래는 수입해야 하는 것들을 더이상 수입하지 않고 우리가 생산하자.
뭘 만들었나? 미국으로부터 많이 원조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의 자유주의 정부 수립을 위해.
비내구성 소비재 생산. 1년 이하 사용재. 경공업 제품들. 교체 주기가 빠른.
이것을 만들어서 국내에서 팔아봤자 금방 포화가 되기 때문에 - 저성장 정체가 나타나자 전략 변경.
3) 1960년대: 수출지향적 산업화 단계.
수입대체산업화를 전략적으로 염두에 둔다. 제1차 경제개발5년계획.
후반기로 갈수록 달러 부족, 원조 줄어듦, IMP의 설득, 미국의 압력 -> 세제개혁, 수출촉진책 등의 개혁정책. 고도성장의 초석.
4) 1970년대: 수출지향적 산업화의 심화 단계.
과감한 자본투입! 선택적인 수입대체산업화를 결합시킨(조선업, 자동차, 디스플레이, 반도체, 전기전자 등의 선택을 하기 시작함) 중화합공업화 추진. = 선택적 ISI.
5) 1980년대 이후: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다변화.
가장 큰 사건은 올림픽, 민주화.
중앙집중적인 구도가 어느정도 깨졌다는 의미. 시민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기업, 국가와 시민 사이의 관계는 이전처럼 권위주의적인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 - 다변화.
올림픽은 국제화의 시작.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움직임. 세계화의 시기.
기술집약적 생산을 했다. 이때부터 삼성이 크게 도약한걸로 알고있다?
국가시민사회의 관계가 급격하게 재편. 경제성장과 축적체제에 대한 국가개입방식의 위기.
해외로부터 원조와 차관은 그대로 받지만, 국제무역을 동시에 진행(국제적인 기준을 맞춰줘야 함). 투트랙. 세계체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종속은 피하면서 '종속관리'를 했다, 그러나 세계 체제적 압박구조에 직면했다.
대외개방쪽으로 정책기조. 그러나 정보가 없어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았음.
- 무역의존도 추이
(수출액+수입액)/GDP*100
- 한국 발전주의 국가의 역사적 진화 과정 2(정권별)
1) 고전 발전주의 국가의 형성(1960~1980)(박정희)
대규모 자본투입을 통해 경제 챔피언의 역할을 해줄 대기업 육성을 목표로 함.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은 정치인과 어느정도 종속이 될 수밖에 없음. 기업인들 불러서 조정하는 정부가 그래서 나옴.
재정과 금융을 중앙화하여 통제, 권위주의적 권력을 활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투자 효율성을 증대.
수출 지향 산업화, 해외 차관의 도입, 불균형한 선택적 산업 육성.
상공부와 경제기획원 간의 경쟁.
경제기획원: IMP의 기조를 수용해 정부 투자를 축소하고 신중한 정책 요구.
상공부: 중화학공업화와 산업구조 고도화를 주장.
2) 발전주의 국가의 변화(전두환 정부 시기)(1980~1988년)(87년에 민주화)
자유화를 추진하지만, 국가 조정력에 대한 합의는 유지되는 형태로 발전. 투트랙.
고전적 발전주의 국가의 초과 투자, 높은 재벌 집중도, 과도한 국가 통제 문제 발생.
경제자유화와 산업 전환: 미국 출신의 자유주의적 경제 관료가 주축이 된 경제기획원&KID vs 수출의 질적 성장과 보호주의를 주장한 상공부&재무부.
선택적 지원을 통해 기업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한편, 연구개발 지원을 크게 늘려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의 전환을 만들어냄.
3) 민주화 이후의 변화(노태우-김영삼 정부 시기)
민주화 이후 정부 개입의 여부 및 필요성을 둘러싼 정부-기업 간의 갈등, 경제 및 산업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경제 관료 간 갈등 부각.
기업들은 기존의 투입 중심, 양적 확장 중심의 정책 선호. 정부는 5.8조치와 같은 구조조정을 주장.
G7 프로젝트(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범국가적 개발)와 같은 연구개발 중대 전략: 기존의 양적 투입 위주의 발전주의 -> 기술-부가가치 중심의 신발전주의로 이행.
상공부: 기업들을 특정 분야로 전문화 해야 한다고 주장.
경제기획원: 하나의 기업에 많은 기능을 부여해 재벌 기업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
김영삼 정부 시기, 반도체 개발에 반대한 경제기획원의 입장이 삼성의 DRAM개발 성공으로 약화, 상공부/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가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의 주축이 됨.
4) 외환위기 이후의 변화 시기(1997년 이후)
외환위기에도 발전주의 국가는 해체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첨단 벤처 육성, 중소 부품업체 지원 등의 형태로 국가의 역할이 더욱 부각됨.
중경회-자유주의적 입장 VS 경제 관료-산업주의적 입장 대립. 또한 각 부서들의 경쟁과 갈등 지속.
- IMP
위기와 구조조정.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어남.
2005년에는 97억 달러까지 증가.
MMA비중도 45%까지 증가.
IMP이후에는 자유화가 진전되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도 많이 들어오게 된다.
우리나라 발전과정이 일본을 상당히 따라함. 또한 중국에서도 할 말이 많다.
- 일본의 발전과정!
생각보다 일본 경제 전문가가 별로 없고 우리나라, 중국은 꽤 있다. 어째서? 우리나라를 정부별로 설명해놓은 것을 일본에서 그대로 수업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 어떻게 일본이 경제성장을 이루었나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
특히 "전쟁", "제국주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변화
고대 이래 동아시아는 중화사상. 천자를 자처한 중국 황제가 주변국 수장을 국왕으로 임명해 지배 영역을 인정하며, 주변국 수장은 황제에게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는 책봉-조공 관계가 일종의 지역질서로 작용.
천자. 천명. 나는 신이고, 나의 말은 곧 신의 말이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
책봉-조공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 단순히 외교관계(무역관계)일 때도 있다면, 종속관계이기도 하는 등의.
16세기 말 - 17세기 초에 걸쳐 한중일 3개국 사이에 한반도를 무대로 하는 네 차례의 전쟁 -> 동아시아 지역질서 개편.
임진전쟁, 정유전쟁 - 임진왜란(일본과 싸운 전쟁). 정묘전쟁(후금과 전쟁. 후금은 여진, 만주, 후금 등의 민족 이름 변화. 홍타이친이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 병자전쟁(청나라와 싸운 전쟁).
네번의 전쟁 모두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한 전쟁.
명 -> 청 교체. 명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 그 전에는 원나라. 몽골이 세운 나라.
사실 한족이 세운 나라는 명나라도 원나라도 아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기 때문에 명이라는 중국을 대체한 것으로 인식.
근대국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다들 바다로 나가 신대륙을 찾았다. 당연히, 동아시아에도 왔다.
아메리카 대륙은 원래 인도를 가려고 했던 것.
이때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기존의 지역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성립된다.
대항해를 시작한 유럽 세력의 관심이 동아시아로 향한다.
포르투칼은 마카오를 근거지로 중국과 일본의 무역 독점. 가톨릭 포교의 전진기지.
에스파냐도 마닐라에서 중국과 교역하면서 왜구의 중계 무역로를 장악.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한다.
중국에 가톨릭 표고기 본격화 - 유교 관습과 충돌.
조선 연안에도 선박 출현.
17세기 중엽에 헤이롱강 지방까지 진출. 만주족과 충돌. 청과 통상을 목적으로 수차례 사절을 보낸다.
네르친스크 조약.
- 아편전쟁
청은 광둥 지방만 무역 창고로 사용. 독점적 상인조합인 공행이 관세를 자의적으로 부과하고 외국 상인의 무역과 행동을 감시, 제한했다.
대항해세력에 외국 세력들이 와서 무역 제한 철폐 주장.
영구에서 차를 수입하고 싶어하는데 당시에는 은으로 결제했기 때문에 - 은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영국은 아편을 팔았다.
아편 밀수가 급증하면서 청에서 은화의 유출이 격증한다. 청에서 아편무역을 단속. 아편 2만 291상자를 몰수해 태움. 영국과 청이 전쟁을 개시 - 아편전쟁 - 난징조약.
- 난징조약
"개방해라!"
광저우,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 다섯 항구를 개항.
600만 냥 아편 배상금 + 1200만 냥 영국 군비의 배상금 + 300만 냥은 영국 상인의 채무 반환금.
개항장에 영국인 가족의 거주를 허가하고 영사를 설치하라.
독점 상인 폐지하고 관세율은 양국이 합의해 결정하라.
- 일본의 개국과 강화도 조약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선박이 도착한다.
영국은 1843년, 미국은 1846년 류큐왕국(현 오키나와 현)에 통상 요구.
교섭을 통해 체결 - 텐진조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내용의 조약 체결.
메이지 유신 정부 수립.
- 일본 메이지 유신과 공업화
봉건시대에서 메이지 시대로 전환.
다이묘가 지배해 왔던 번의 권력 해체, 행정구역을 개편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 확립.
서양식 우편제도 도입, 철도 부설, 일본 근해 해운권 확립, 일본은행 설립 등.
국민계몽과 교육제도.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들은 농민들보다 비천한 신분으로 여겨졌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정부는 근대적 산업기반을 일으키는 기업가들이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실업가임을 강조. 이들이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실업계에 진출하도록 유도.
원래 상공업 종사, 무기를 다루거나 - 하는 일은 비천하게 여겨졌지만 실업가의 역할이 산업화에서는 중요. 실업가의 역할을 사무라이가 담당.
무사출신의 기업가들 탄생.
내셔널리즘에 기초한 경영방식으로 공업화 탄생.
일본의 독점자본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금, 은, 철, 석탄 등의 다양한 광물자원을 개발. 조선의 광물자원 수탈.
- 청일전쟁
우리나라에서 창시된 종교. 최재우의 동학. 반댓말은 서학=천주교.
동학을 구분한다는 의미, 서구문물보다 우리것을 지킨다는 의미.
혹세문민이라며 최재우를 잡아온다. 그런 배경 하에 발발한 것이 전라남도에서 정봉중이 동학농민운동. 청나라가 개입하자 일본도 들어와서 - 청일전쟁이 발발한다. 일본 승리.
동아시아에서 청의 세력이 급격하게 줄고 일본의 세력이 급격하게 늘었다.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고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대만)을 얻었다.
청은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승인하고(청이 조선에게서 손 떼라.) 청은 일본에 랴오둥 반도, 타이완, 펑후 열도를 할양해라. 군비 배상금으로 2억 냥을 8회에 나누어 지볼하고 통상항해조약과 육로교통무역에 관한 약정을 체결해라. 항구를 추가 개항하고 일본 국만이 개항장에서 자유롭게 제조업에 종사하게 하고 세금에 특권을 부여해라.
- 러일전쟁
러일전쟁도 우리나라때문에 발발.
1904년. 청나라 세력과 만주족 세력이 충돌. 만주를 무장 점령. 일본측에 한국에 대해서 중립화를 제안. 일본이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해서 개전. 일본의 대승으로 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
비슷하게 뤼순 항구와 다롄만 및 그 부근 영토와 영해를 일본에 영도. 철도, 광산, 재산 등도 같이 양도해.
- 만주사변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만주에 만주국을 세운 것을 만주사변이라고 한다.
만주에 철도를 연결해 자원을 전부 일본에 보낸다. 제국주의적 -> 공업화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
전쟁은 일본의 발전사에서 빠지지 않는다.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중국 침공을 위한 전쟁의 병참 기지를 만들고 식민지화하기 위해 일으킨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에서 유명하다.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상황은 극심한 상태. 미국의 원조식량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
미국은 군국주의를 해체하지만 - 중앙정부 기구는 남겨둔다(천황 시스템). 간접적으로 일본을 통치.
권위주의적 통치형태를 전부 청산. 공업, 농업, 노동 등 전 분야에 걸쳐 개혁을 실시.
민주제도를 도입하고 재벌을 해체하는 등의 경제개혁. 미츠이, 미츠비시, 스미토모, 야스다 등의 4대 재벌구조.
지주회사를 해체해 족벌의 기업지배를 배제하고 소유 주식을 공개 분산.
그러나 냉전시기 소련의 위협으로 일본의 경제화를 도와줄 필요성이 생긴다.
- 일본의 재벌
애도시기 이후 메이지 시대를 거치며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정책과 장려책의 도움을 받고 성장한 재벌.
재벌 시스템이 족벌 체제. 가족 중심의 소유체제. 방계/직계 형태의 통합관리.
재벌 기업은 지주 회사가 있다. 계열사들의 핵심주식을 보유. 그 주인이 진짜 기업의 주인.
기업지배구조에 중속.
또한 금융 부문도 지배 - 자본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음.
- 한국전쟁과 일본 경제의 도약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가 단번에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한국전쟁이다.
군수품 생산, 섬유, 금속산업에서 큰 호황.
도요타와 닛단 등도 파산 직전이었다가 기사회생.
1970년대 오일쇼크 전까지 고도성장을 이뤘다.
1) 기술도입과 기술혁신
2) 수출전략산업 집중 육성
3) 입지가 좋았다.
4) 전 세계적 경제호황시대 - 손쉬운 해외시장 개척.
5) 노사간 안정적인 관계.
- 일본 기업의 3대 고용관계
1) 종신고용제.
노동자가 별로 없었으니까 데려다가 죽을때까지 여기서 일하라고 했다.
2) 연공서열제.
3) 기업별 조합.
노동조합이 - 노동에 대한 것들을 미군에 의해 철폐된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은 재벌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지지함. 잘 형성되어 있다.
- 버블경기와 잃어버린 10년
원래는 유가가 저렴했기 때문에 수출/수입이 좋았고 - 값싼 노동력으로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해서 수출하기 좋았다.
그러나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미국의 경우 일본산 자동차를 수입하기 시작한다. 원래의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하락세에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 자동차가 작았기 때문에 연비가 좋았다. -> 자동차 산업의 발전
일본 정부의 규제와 보호정책으로 외국산 제품이 일본시장에 진입하지 못하자 - 미국이 라이벌로 규정함.
일본의 경제거래는 거래를 반복하며 관계를 중시하는 배타적 특징.
- 플라자 합의: 환율조정을 통해 대외불균형을 시정.
실질적 목적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면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미국의 경고.
지금은 미국이 중국에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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