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일본정치론

일본정치론 (3) 전후 일본의 정치와 55년 체제

끔벅이별 2024. 3. 21. 14:40

- 지난 수업의 내용

 

일본은 모두 아시다시피 임진왜란이 지나고 막부가 들어서고 300년간 통치를 진행했다. 하지만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아편전쟁에서의 청나라의 패배, 막부 내부의 자본주의 발전에 의하여 사무라이 중심의 계급사회에 대한 불만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개항을 요구하게 되고, 새로운 근대 국가의 필요성에 대하여 엘리트들이 느끼게 되면서 기존의 막부를 뒤집고 근대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메이지 유신'이 발생했다.

 

그들이 내세우기를 존왕양이. 천황이 일종의 주권자(권력의 중심)이 되는. 천황을 쫓아내는 것도 생각했지만 동양의 전통적인 비전인 부국강병에 대하여 고민했다. 국제질서에서 일본은 지위가 낮았는데 일본의 관계개선 노력을 무시하면서 열받게 된다. 제국주의 시대에서 침략을 통해 부를 누릴 수 있다는 논리와 나라가 잘 살게 되면 강병도 따라오게 된다는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 '강병'을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

 

식산흥업. 무역입국. 이른바 중상주의 국가의 건설. 서양이 우리보다 강하니까 그들을 따라잡아야겠다. 지금도 가끔 신문에 보면 국제정세에 대해 잘 아는 나라와 모르는 나라가 어떻게 갈리는지에 대해 주장하는 글이 실린다.

 

탈아입구. 아시아를 벗어나고 서양이 우리와 함께 가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만 일본의 엘리트들의 생각은 우리는 아시아에 위치가 있어도 선진국과 같은 위치이지 아시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894년에서 청일전쟁이 발생. 동아시아 역사에서의 의의: 중화질서의 붕괴. 중국 중심의 질서 2천년이 무너졌다. 전쟁은 하필 조선에서 했지만요!

 

1904년부터 05년까지 러일전쟁에서 다시 일본이 승리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국제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떠오르게 되었다. 1889년도에 일본이 근대적인 헌법을 만들게 되면서 근대적인 국가를 만들게 되면서 의회제 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910-20년대 다이쇼 천황이 다스리던 시절 민주주의가 성장하게 된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부른다.

 

1925년에는 남성 보통선거권.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 국제 협조주의의 차원에서 관계개선을 노력.

아시아에서의 최강국. 미국과 러시아 등과 같은 수준의.

 

일본은 군국주의화 같은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대공황 같은 경제위기에 의한 변화. 1931년에 만주사변. 만주의 관동군. 일본군. 만주는 원래 애매한 위치였다. (중국이 지배한다고는 하는데 행정적 영향력이 없는. 조선인도 어느정도 거주하고 있는.) 만주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세운다. 만주국은 이상적인 모습들이 있다, 이후에 전후경제 및 한국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일본 국내에서는 여러가지 암살시도와 쿠테타 등이 군국주의의 움직임이 발생했다.

 

1937년에 본격적으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게 된다. 본격적인 중일전쟁. 그전까지만 해도 변방이라고 생각했건만 중국의 핵심적인 지역을 점령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을 했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1938년도에는 동아신질서 집필. 인종주의적인 사고의 기반 - 아시아는 아시아끼리 뭉쳐서 서구세력으로부터 침략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

 

전부 다 제국주의로 경쟁하는 시대에 우리도 참여했을 뿐이라는 정당화.

 

주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의 석유가 많이 들어왔는데 그 길목을 미국이 차단하게 된다. 그를 가만두지 않으면서. 일본이 개발비를 가장 많이 주는 나라가 인도네시아이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진주만 공습을 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의 일부. 사실은 주로 미국과 일본과의 전쟁을 따로 떼서 태평양 전쟁이라고 말한다. (=대동화 전쟁, 왜 쓰면 안 되는가? 10년전에 자기네 항공사령관이 논문에다가 대동화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옷을 벗었다고 한다. 그 말은 안좋은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전쟁 종료가 된다. 이미 지고 있었고 일본의 항복 메세지를 비밀리에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을 터트렸다니 이거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하는 주장. 일본은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로써의 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 전후의 책임론이 밀접해지고 모호해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1945년 8월 10일에 종전 선언. 천황이 방송을 통해서 전쟁을 끝낸다고 발언. 일반인이 못 알아들었을 거라고 평가. (에둘러서 표현하고 오래된 일본어를 사용.) 성스러운 결단, 천황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하는 극단적인 사람들 존재.

 

1945년 9월 도쿄의 전범재판 시작. 전쟁의 주범이니까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던지. 일부 사람들은 풀려나게 된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그때 다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일본의 우수함이 지속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 1945년 8월~1952년 4월. 연합국에 의한 점령기. 주권을 잃어버렸던 상태.

 

* 우리 어릴때도 생각보다 괴상했군요? 맥아더 장군의 625 전쟁에서 활약상이 담긴 조그마한 만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고 그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있는데.

 

대위, 중위, 소령 등이 간부로 활동. 낭만주의자와 이상주의자 많았음. 이 나라를 좋은 나라,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어 보자면서 다양한 실험 진행. 일본과의 전쟁중의 수많은 사망자들 때문에 산업국가가 아니라 농업국가로 만들어 다시는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하자 라고 실행. 맥아더 장군 비판 -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일본인들을 잘 만나지도 않았다.

 

비군사화, 민주화. 일본을 이 두가지를 하자는 것이 점령기의 가장 큰 목표.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자. 물론 책을 읽다보면 인종주의가 강하게 작동하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들을 실행했음을 알 수 있다.

 

무기를 전부 다 없애버리고, 군수산업기지을 해체하고 등의 일을 실행. 제일 결정적인 것은 1946년 11월에 일본 헌법을 공표하면서 9조 1항에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적었다. 전쟁을 포기하고 군사력을 가지지 않고 싸운다거나 등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군대가 없다! 자위대는 무력은 있지만 군대는 아니다.

 

비군사화에 못을 박는다. 이거 때문에 계속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정치인들은 지금까지도 헌법 개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조 활동 보장.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들었다. 사상의 자유를 가급적 실현하고자 하는 젊은 장교들의 꿈. 장교들의 일부가 일본어를 강의하기도 하고 그들 중 일부는 한국에 와서 정치했다가 한국에 대해 배우면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는.

 

재벌 해체. 개혁.

 

지방자치제도 도입. 지방에서의 선거. 우리나라는 1992년에 도입했으나 당시 미국은 민주화를 위해 지방자치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함.

농지개혁. 되게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되려면 중산층이 많아야 함. 지주가 있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며 자작농이 많아야 작동한다. 전쟁에서 죄다 날리고 전부 농사하면서 평등한 사회가 유지되게 된다.

 

1946년 1월에 공식 추방령? 군인이었던 자들, 군사 관련자들을 그 직종에서 추방. 새로운 일본을 만들자! 일본인들은 환영했고 해방감을 느꼈다. 미국에 패배했다고 해서 별로 미국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자유로운 사회가 되면서 좋아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물론 프로파간다일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기본적인 정책이 변화한다. 왜 변화하느냐? 미소대립 때문에. 국제정치의 분위기가 긴장되면서 이념대립이 심화된다. 미국의 일본정책도 변화하게 된다. 미국이 영국에 한 것을 마샬 플랜이라고 부른다면(경제가 어려울수록 공산화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생각, 유럽 국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 및 부흥을 보내주면서) 아시아에서도 공산주의가 퍼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경제를 부흥시켜서 그를 막아내야겠다고 생각함. 옛날에는 좌파에 힘을 실어줬다면 그 분위기가 변화.

 

한국전쟁이 발발되면서(냉전의 공고화), 훨씬 더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발생한다. 48-49년도에서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보수 정치인들이 복귀할 수 있게 되고 도리어 좌파들을 쫓아내고 노조를 탄압하는 - 번역하면 빨갱이 추방이 발생. 심지어 미국이 일본에게 재무장을 요구하게 된다. 유럽도 동일하게. 서독이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때 재무장을 촉구하게 된다. 일본이 재무장을 거절한다. 요시다라는 사람이 총리였는데 그 사람은 우리는 헌법때문에 안된다 등의 이유를 대면서.

 

한국전쟁은 일본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특히 경제발전에 있어서! 전쟁 특수. 전쟁 자체는 비극적이어도 전쟁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 만큼 좋아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전쟁 복구 사업에 끼어들면서 몇십조는 따낼 수 있다는 말들이 있다. 한반도 옆에는 일본이 주둔하고 있으니 생산기지로 활용되면서 일본 경제가 급격하게 살아나게 된다. 요시다 같은 사람이 천우신조라고 표현된다. 하늘이 내린 선물/기회.

우리나라 또한 성장에 대한 여러가지 시대가 있지만 베트남전(월남전쟁)에서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다. 군대 파병의 대가로 군수품들을 한국에서 만들고 수많은 한국인들을 나른 사람들이 대한항공이 되고 건물을 올리던 사람들은 건설기업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은 비군사화에서 변했고, 보수를 지지하는 방향으로도 변했다.

 

그런 가운데 한가지 독특한 것은 요시다가 총리일때, 태평양 전쟁 당시 보수적인 이들이 많이 비난받으면서 공무원을 많이 충원했고 관료와 공무원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효율적으로 작동되는 동시에 정관유착도 심화되었다.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강화) 전쟁의 뒤처리. 점령기 동안에는 하지 못했다가 점령기를 끝내면서 일본과 연합국 등이 전쟁을 종료하는 조약을 맺게 된다.

 

패전국에게는 배상금을 요구하게 되는데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의 발생 원인은 독일의 지나친 배상금이라고 지적하는 의견 존재) 냉전분위기인 만큼 미국이 나서서 일본에 대한 배상금을 없애주었다. 일본으로써는 시기를 잘 만났다고 볼 수 있음.

 

 

요시다 총리가 이때 미일안보조약을 맺는다. 말하자면 중요한 이슈. 쟁점. <단독강화론>, <전면강화론>. 친구가 하나만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미국과 동맹을 맺었을 때는 두가지 위험이 있다 - 하나는 방기될 수 있다(버려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연루될 수 있다. (나는 쟤를 때린적이 없지만 동맹 친구가 때려서 연루되거나, 나는 맞지 않았는데 동맹 친구가 맞아서 싸워야 하거나.) 

 

전쟁을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두루두루 친해야 한다고 주장. 심지어 진보 쪽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게 맞나? 적대국이었는데? 

 

그런 가운데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요시다가 경제성장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그러한 주장을 우리는 보통 "요시다 노선"이라고 말한다. 요시다 총리가 생각했던 일종의 전략적 방향. 물론 요시다가 명확하게 말한적은 없지만 다수의 보수 정치인들이 그의 정치적 방향성을 지지하고 그 방향으로 이동하게 된다 80년도까지.

 

80년도부터는 군사적 주장, 미국에 덜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 발생.

 

 

전쟁 전 요시다는 관료였다. 그러나 이전 정치인이었던 다른 사람들은 요시다 노선이 아닌, 독립했으니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 소련과 중국과도 수교하는게 맞다고 말함. 기시다 총리였을때 실제로 소련과도 관계개선을 논의.

 

요시다라는 사람의 생각은 70년대를 지배했다.

 

미일안보조약을 맺으면서 미군 주둔을 허용. 사회주의적 관점에서는 주둔을 취소하고 우리가 우리를 지킬 힘을 가져야 함. 반 요시다들은 전면 방어론을 주장. 사회당.

 

결과적으로는 일본이 세계경제대국이 되면서 요시다의 결정이 옳았다. 만약 냉전이 계속 진행되었다가 또다시 전쟁에 휩쓸렸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 - 당시 사람들이 엄청난 반대를 하고 짧은 필름을 보면 격렬하게 저항한다. 안보조약을 맺을때 계속 조약 개정을 10년마다 해야 하는데 그 개정을 둘러싸고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며 당시 도쿄대 여학생이 사망하는 사건 등이 일어났다.

 

1955년 2월에 총선이 있었는데 사회당이 많은 표를 얻음. 그때만 해도 좌파 우파가 있었어서 서로 정말 싸워댐. 다투다가 55년 2월 총선을 앞두고 통합된다. 그 이유? 가장 큰 이유는 개헌을 막기 위해서. 헌법 9조를 없애고 군사력을 얻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힘을 가져야 하니까!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2/3이 찬성해야 하니까.

 

거기에 더해서 경제의 발전속도가 가속화되면서(한국전쟁으로 인해) -> 가장 먼저 발생하는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 사회당 지지자들이 증가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사회당이 집권하겠구나 하는 우려가 발생. 사회당은 평화를 주장하고 평등을 주장했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 걱정하기 시작하고 특히 재계에서 우려. 보수세력이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분열되어 있던 당을 통합하라는 주장. 미국 또한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국가가 되어야만 세계전략에 유리하기 때문에(사회주의 국가는 안됨) 1955년 11월 자유민주당이 결성되게 된다.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쳐진 것.

 

똑같은 이름을 가진 정당이 몇십년째 내려오게 된다. 그 자민당은 1993년 7월까지 집권하게 된다. 당시 다른 나라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체제를 만들고 - 55년 체제라고 말한다. 교과서에도 적혔던 것처럼 장기집권 동안에 정착된 독특한 정치혜택을 말한다.

 

 

- 일본에게 정치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

 

1965년에 전쟁을 회복하고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회귀했다고 선언. 1956년 10월에 소련과 국가정상화. 이게 왜 중요한가? 소련과 관계를 개선함으로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일본이 국제무대에 주권국가로써 등장했다. (졸려서 좀 졸고 있다)

 

 

기시다가 사임하고 이케다가 61년에 집권하면서 내세운 비전이 '소득배증계획'이다. 10년 안에 소득을 두배로 높이겠다면서 경제성장의 성과를 국민들이 함께 가져간다는 것을 어필한다. 이 사람 왜 중요? 이전까지 안보가 중요 이슈였는데 이케다가 쟁점을 경제로 돌림. 실제로 일본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 10년만에 소득을 두배로 올리겠다고 한 공약 -> 1967년 성취. 경제성과를 강조하는 자민당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지지.

 

사회당의 경우 여전히 이념투쟁, 안보문제. 사람들이 관심 떨어짐 -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게 됨.

 

이케다 시대를 통해서 경제 중심으로 전환, 자민당 장기집권의 발판.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 아시아 첫번째. 자신들의 성공 과시. 

 

1968년도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이 됨. 서독을 제치고!

 

60년대: 일본이 전세계에서 경제분야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시기(군사력은 아님). 국민적으로는 여러가지 문제 발생.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적 불평등, 환경문제, 복지문제 이슈 발생. 특히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

 

중앙정치에서는 자민당, 지방정치에서는 혁신계열이 많이 등장. 사회당 계열 혹은 사회당이 지지하는 후보자. 독특한 시대.

 

1971년도. 환경청 설립. 일본이 환경정치에 관심을 두고 성공한 나라. 환경 개선 성공적.

 

일본정치의 가장 큰 이슈 발생! 1971년도 닉슨 쇼크. 닉슨은 미국 대통령. 전세계적인 쇼크를 준다 -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주장. 당시는 대만이 중국 대표였다. 유엔에서 대만을 몰아내고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회원으로 받아들임. 일본에게 엄청난 충격 - 미리 알려줘야 하는데 알려주지 않았음. 적대국가였던 중국에 대해서 미국이 먼저 접근하면서.

 

일본 외교사의 충격중의 하나. 동맹국이 큰 일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는 것. 또 하나는 닉슨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서 경제가 예상 불가능한 국면으로 들어섬. 즉 안보 위기, 경제 위기 두개가 발생.

 

 

72년도에 다나카라는 사람이 총리로. 이 사람은 71년도 닉슨 쇼크 때문에 일본 사회가 긴장했던 것을 기존의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 시킴. 경제적으로도 중국 시장이 상당히 크다.

 

다나카라는 사람은 '일본열도개조론'으로도 유명. 일본 내의 교통망과 통신망의 발전. 핵심은 국토균형발전. 다나카가 니가사라고 하는 시골 출신의 국회의원이자 건설업자(자기 이익과도 관련). 신칸센을 많이 놓게 된 이유가 다나카 총리가 그것을 국토 개발계획으로 삼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이유: 이명박 또한 건설업자. 일본에게는 호감형. 오사카 출신이기까지 한 이명박. 일본에서는 되게 좋아했다.

 

다나카의 별명은 컴퓨터 달린 불도저. 지방 중심의 발전. 훗날 선거에서 자민당의 지지기반은 농촌에 있다. 사실 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 정치자금을 상당히 잘 받는것으로 유명(뒷돈을 잘 받아먹었다는 뜻). 다나카 붐이 일어나면서 그런 사람이 다시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소망. 그는 리더쉽이 강함. 세습형이기 때문에 좋은 집안, 주로 도쿄대 졸업. 다나카는 중학교 졸업 출신 및 공업학교 건축학과 졸업.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면서 총리가 된 사람. 다나카 총리 부인이 이혼녀 - 이혼녀와 결혼해서 성공했다는 말도 있음(농담이래).

 

이혼녀가 자신과 결혼할때 세가지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번역하기를 1) 이혼하지 말 것, 2) 때리지 말 것, 3) 총리가 되면 천황에게 갈때 나와 같이 갈 것.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지어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잘 지어내는 사람이었다). 총리가 되고 함께 갔다고 한다. 

 

그의 딸 또한 세습의원으로 최초의 외무상원이 되었다고 한다.

 

비판점: 토건국가. 하천에 보면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다 - 비가 많이 오는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때의 영향.

 

파벌정치, 후원정치가 특징. 대표적인 사람.

 

 

그다음은 니키라는 사람.

 

주변국들이 공포에 떨었다. 일본의 군사비라고 하는게 1%는 작아도 비용은 컸다(경제가 크니까).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방위비는 1%를 넘지 않겠다고 선언. 훗날 깨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1977년에 후쿠다라고 하는 사람이 총리. 다나카의 정적. 도쿄대의 엘리트의 상징. 후쿠다 독트린이라고 하는 외교선언.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확인. 군사대국까지 되면 과거의 우려가 나오니까 주변국들에게 알림. 아시안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 원조배중계획. ODA. 원조를 많이 주겠다.

 

다나카 총리가 그 전까지 동남아시아를 순방간적이 있는데 간 곳마다 데모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동남아에 들어갔는데 나눠주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 추구 - 이미지만 나빠짐. 후쿠다는 그런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원조 배중계획을 실행.

 

진짜 자고싶다.

 

엄청난 성장 가운데 평등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 사회의 특징이 된다. 1억총중국.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90%가 중위라고 답변. 일본이 보편적인 복지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와 유사하게 평등사회로 유지. 사회주의가 없음에도! 어떻게 그런 평등한 사회를 이뤘을까? <- 연구주제.

 

70년대까지가 55년대 체제의 피크. 80년대가 되면서 변화. 신자유주의 유행. 대처 총리가 나옴. 8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레일건이라는 사람이 나옴 - 신자유주의자의 지지자. 규제 완화, 작은 정부 주장. 전세계적으로 전파. 세계화의 시대! 일본의 보호주의가 쉽지 않아짐. 55년 체제라고 하는 것들이 유지되지 않게 됨.

 

 

 

존 바우어. 일본 전후 공허/허탈감. <- 재밌겠다.

 

일본은 50-60년대 혼란스러웠다. 농민당(진보적 정치인)이 연설하는데 16살의 중학생이 찔러 죽이는 등의 사건. 보수주의자들은 국가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을 주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전쟁에 다시 휩쓸릴 수 있다며 거부함. 그러나 정치인들은 굴하지 않고 안보조약을 맺음.

 

당시 미군이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는데 더 가지게 된다는 것에서 용납하지 못함. 상식적으로.

 

80년대의 일본은 전세계의 롤모델. 일본식으로 정치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미국 다음의 강대국이 일본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워크맨은 일본의 성공을 상징.

 

1980년대 신자유주의. 55년 체제의 보호주의 작동이 어려워짐. 기존의 농민의 이익을 지켜주기도 힘들어짐.

일본의 기업들 같은 경우에도 보호주의에 동조했으나 상대 국가에서도 막을 수 있게 되다 보니, 개방을 오히려 요구하게 됨. 워크맨처럼 개방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게 됨. 자민당에서도 개방할수밖에 없게 되었다.

 

농민들에게는 불만이 쌓임. 평등했던 사회가 평등해지지 않게 됨.

 

70년도에는 근로자보다 농민들의 수익이 높았다. 80년대가 되면서 세계화 -> 55년 체제 위협 -> 변화.

 

 

1982년~1987년부터 나카소네라는 총리. 총리로써 전두환때 처음 한국을 방문. 왜? 일본에게 돈 달라고 요구.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으니까. 몇십억 달러를 달라고 함. 한일관계가 좋아져서 총리가 전후에 처음으로 방문.

 

또한 나카소네가 장수총리로 유명. 규제완화, 민영화 강조. 국영기업들을 민영화 시키고 국제국가라는 개념을 강조. 일본은 이미 강대국으로써의 역할/위상을 가지고 있는데 더 적극적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국제문제에 관여하게 되는 계기. 주변국들의 우려(전범국으로의 피해)때문에 아시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넓혀나갔다면 나카소네부터는 세계의 문제에 적극적.

 

나카소네는 강한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에 헌법개정을 강하게 주장. 총리일때는 하지 않음. 왜?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는 평화를 강조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본인은 헌법개정수정론자.

 

국제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많은 노력을 하고 방위비 1%를 없애려고 노력.

 

 자민당의 지지기반이 변화. 기존의 혜택을 보장할 수 없게 됨.

 

 

1985년 플라자 합의. 일본과 미국이 모여서 합의. 일본 물건이 너무 잘 만들고 너무 저렴하니까 일제가 붐이 됨. 미국이 무역 적자를 너무 많이 보니까 해결하기 위해서 - 물건을 잘 만드는 건 어려운 방법, 물건값을 비싸게 하는 건 쉬운 방법 -> 엔화의 가치를 높이면 된다.  1달러에 700엔인것을 1달러에 450엔으로. 평가절상. 

 

수혜자는? 우리나라. 한국 물건이 너무 저렴하니까 미국에서 잘 팔림. 가성비 전략. (현재는 중국이 이쪽 아냐?)

 

일본이 수출을 많이 못 하게 되지만 합의를 하게 될 수밖에 없었음.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고(일본의 보수들이 분노함).

 

일본 경제가 좋아지는 것처럼 보여짐 - 버블 경제. 엔화의 가치가 높아지니까 일본이 미국의 회사들을 구매함. 80~90년대 초에 일본을 악마화하는 영화들이 많음: 일본의 경제 침공으로 여김. 일본의 경제가 좋아졌다기보다 활성화됨. 외국이 값싸지니까! 

 

결국에 버블이 터지면서 경제가 꺾인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이 최고의 강대국이 될 거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최근의 미중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이 미국을 꺾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것이 일본의 체제를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플라자 합의라는 것이 있었다.

 

 

1890년대에 쇼와 시대가 종료. 헤이세이의 시작. 2019년대에 헤이세이가 종료되고(여러가지 이유로 종료) 레이와 시대가 시작됨. 

 

일본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벌어진다. 1990년-1991년. 걸프전. 이라크가 프로이트를 침공. 이걸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일본에 인적 자원을 요구함(군인). 안간다는 주장이 우세함. 왜? 헌법 구조가 있으니까. 일본을 침략한 것도 아닌데? 인적 자원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돈을 제일 많이 낸다.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뉴옥타임즈에 땡큐라고 광고를 냈는데 일본이 없다. 다른 나라들은 피를 흘렸는데 너는 뭐 했냐고 비난받음. 일본 외교를 수표외교라고 함. 미국은 개인 수표를 써서 돈을 주는데(채권), 일본이 그런 외교를 하는 나라다라는 비난. 두번째 큰 충격.(닉스 사건 이후)

 

보통국가론이라는 주장 등장. 모자와라는 사람. 총리는 못했지만 총리와 맞먹는 업적. 그 사람이 쓴 책 제목도 보통국가론. 어떤 나라든지 간에 경제력이 있으면 그만큼 군사력이 있는데 일본은 군사력이 없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우리도 보통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 헌법개정을 해야한다. 헌법개정이 90년대가 되면서 주요한 쟁점이 된다.

 

80년대 중후반에 버블경제가 발생하면서 - 이후 폭발하며 나빠지게 된다. 당시 버블경제의 핵심 중 하나는 부동산이었다.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은행들이 그 사람들에게 채무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도산하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90년대 일본의 경제는 2%의 성장. 대부분은 1.%의 성장을 하던가 마이너스를 찍었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고 -> 2000년대도 저성장을 하면서 잃어버린 10년~20년이라고 한다.

 

2010년까지도 잘 성장하지 못하면서 그걸 깨겠다고 하며 나타난 것이 아베. 저성장 시대를 깨겠다!

 

버블경제 이후로 좋지 않은 시대가 이어지게 된다. 아베 총리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이런 저성장 시대를 깼기 때문. 이런 저성장에 대한 책임은 집권당이 져야 하기 때문에 자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 부패사건 발생. 정치자금 문제. 일본정치의 고질적인 문제.

 

90년대 초반에 경제가 나빠지니까 자민당 내에서 개혁을 둘러싼 갈등 발생. 자민당의 일부 요원들이 탈당을 하게 된다. 미야자와 총리 매각 통과. 일본 신당이 중심이 되어 '비자민(비공산)연립정부' 구성.

 

94년 6월이 되면 다시 자민당이 사회당과 힘을 합쳐서 자신의 위치를 되찾는다.

 

 

 

마지막으로 일본 체제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55년 체제라고 불리는 독특한 사건들.

 

1) 일당 우위제 (1.5정당제).

보혁대립구도. 보수 - 혁신 대립.

2) 경제우선주의. 발전국가. (관료->경제)

일본주식회사. 정 - 관 - 제 협력하는 체제. 경제적 성과의 과실을 나눠주다 보니: 평등사회.

3) 평등사회: 공공사업, 보조금, 세금혜택. 소상공인은 세금을 거의 잡지 않고 기업은 많은 세금을 낸다던지. 보편적인 복지라는 것은 개인 단위의 평등이라면, 일본은 지방에서 공공사업을 많이 한다던지/특정 직업군에게 더 많은 보조금을 준다던지의 '기능적 등가물': 보편적인 복지의 기능은 없어도 기능적 등가로 복지-평등을 유지.

4) 미일동맹(미국의존안보)